1.

“새로 온 파일럿이 너인게냐?”

내밀어진 손이 바깥의 쌓인 눈만큼 하얗다. 5년째 지속되는 겨울에 흰색이면 신물이 나던 아도니스마저도 참 예쁘게 생겼다고 느낄만한 고운 손이었다. 굳은 일보단 쉬운 일이 더 어울리는, 현장보단 센터가 더 어울리는, 파일럿이라기엔 너무 흉터가 없는 손이다.

“오토가리 아도니스라고 한다.”

그러나 아도니스는 그것이 저의 착각임을 안다. 아도니스가 가장 먼저 사쿠마 레이에 대해 들었던 정보는 홀로 예거를 조종해 카이주를 다섯 이나 잡았다는 것이었다. 둘이서도 하나를 잡기 힘든 괴물을 혼자서 다섯씩이나 잡았다는 영웅담의 주인공이 바로 제 앞에 있었다. 하얗고 고운 손을 내민 채로 말이다. 아도니스는 레이의 손을 마주잡았다. 센터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도니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본 레이는 여전히 붙잡고 있는 손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셔터돔에 온 걸 환영한다. 만나게 되어 반갑구나.”

거대한, 어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모든 것을 다 잃은 줄로만 알았는데, 아도니스는 레이의 손을 꽉 붙잡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레이는 아도니스의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는 듯 마는 듯 차가워 보이는 미소로 아도니스의 등을 끌어안았다.


2.

오늘도 눈발이 휘날린다. 아도니스는 아침에 일어나 준비 운동을 하기 전 가장 먼저 날씨를 확인했다. 차가운 눈 속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속안의 깊은 곳 까지 침투해있던 독소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후아, 후아. 숨을 내쉬는 아도니스의 옆에 어떤 남자가 선 것은 숨쉬기 운동이 딱 20번째를 채우고 나서였다.

남자는 노란 머리에, 보라색 눈을 가지고 있었고, 키는 저보다 조금 작았으며 피부가 하얗고 맨발이었다. 남자는 눈 위를 맨발로 서있었다. 아도니스는 남자와, 남자의 발을 번갈아보았다.

“춥진 않은가?”

“음, 별로.”

“추워보인다.”

“추우면 이러고 안 있었겠지.”

남자는 방긋 웃으며 몸을 털었다.

“네 이름 오토가리 아도니스 맞지?”

“...맞다. 어떻게 알았지?”

“저번에 봤어. 난 한 번 보고 들은건 절대 까먹지 않거든.”

몸을 굽혔다 일어서는 마지막 체조를 끝으로 남자는 아도니스의 어깨를 통통 두드린 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잘해보자는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딱히 서로에게 잘할만한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아서 고민하느라 대답할 시기를 놓쳤다.


3.

남자의 이름은 나루카미 아라시라고 했다. 2년 전에 함께 예거에 타던 형제를 잃고 실직자처럼 아무일이나 막 하고 살다가, 이번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는 물음에 그 사실을 아도니스에게 속삭이던 남자는 돈이 필요했겠지, 하고 조금 전 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과연 돈이 필요했을까.

나루카미 아라시는 말투가 가볍고, 행동이 상냥했다. 셔터돔에 입소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도니스를 위해 가장 많이 물심양면으로 힘써준 이가 바로 아라시였다. 아라시는 아도니스와 가라데를 연습하며 ‘아마 우리가 드래프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라시의 표정이 어두워서 아도니스는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다. 무엇이 괜찮을지, 괜찮지 않다면 무엇이 괜찮지 않은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두 사람은 같은 방을 썼다. 방은 무척 간소했다. 아라시는 짐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만큼 정리도 빠르게 하는 편이어서 방을 어지럽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도니스는, 그냥 짐이 적었다. 드래프트 테스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두 사람의 사이는 좋았다.



4.

슈트를 벗어 던진 아라시가 기체에서 뛰어내렸다. 아도니스는 기억의 공유가 해지되어 몽롱한 상태에서 셔터돔 밖을 나서려는 아라시를 보았다. 조금 전, 아도니스가 본 장면이 그 위로 언뜻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화가 나서 뛰어내린 아라시, 그리고 홀로 출발 한 예거... 시체조차 찾지 못할 만큼 산산조각이 난 그 예거에는 그의 형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아픈 기억 속에서 내 것을 찾았다. 그저 잠시 다른 나라에 있었을 뿐인데 돌아온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사과를 할 수도, 원망을 할 수도 없어서 악착같이 살아남는 것만이 방법처럼 느껴질 때.



5.

아라시는 매일 같이 아침운동을 하던 곳에 있었다. 여전히 맨 발이었다. 하얀 발 위로 눈이 쌓여있었고, 무척 발갰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새빨간 발 위로 아라시의 눈물이 툭툭 가감 없이 흘러내렸다. 아라시는 고개를 숙이지도, 들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멀리보이는 수평을 관찰하듯 그렇게 긴 시선을 밖으로 던지고 자신은 앞으로 다시는, 누구와도 드래프트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거 알아 아도니스쨩? 나 엄청 똑똑해서, 한 번 보거나 들은 얘기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거든. 내가 그날 형한테 뭐라고 했는지, 마지막으로 본 형이 어땠는지... 전부 다 기억해. 죽을 때 까지 남아있어. 이런 기억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도니스는 대답 대신 아라시의 발 앞에 무릎을 꿇어앉고 꽁꽁 얼어붙었을 하얀 발을 제 손바닥 위로 올려놓았다. 언 발이, 녹아내리라고. 네가 서있는 곳은 어쩌면 네 생각보다 차갑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그날 밤에는 아라시가 미처 다 보지 못한 아도니스의 기억을 하나하나 말로 전해주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형제는 몇 명인지,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또 어땠는지. 말하다가 눈물이라도 한방울 보이게 될까 무서웠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다음을 찾게 된다. 아도니스는 아마도 다음이 있다면, 네가 아닐까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6.

손과 발만큼 뽀얀 몸은 자잘한 상처를 많이 달고 있었다. 개중엔 보기 흉한 것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자잘한 상처들이 전부였다. 아도니스는 아라시의 상처를 손끝으로 오래 더듬었다. 투박하고 딱딱한 손가락이 이미 흔적만이 남은 상처 위를 거닐때마다 아라시는 숨을 참았다. 몸이 껴안아진 순간에는 눈물이 흘렀다. 키스를 하느라 부벼진 뺨에서 느껴지던 축축함이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것인지 혹은 두 사람 모두의 것인지...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예거가 그러하듯 서로의 왼손 왼발, 오른손 오른발이 되어주자. 맞아 그랬다. 그거면 됐다.






진짜 빠르게 호다닥 썼다 다음에 더 길게 쓰고싶읍니다. 



Posted by Piece of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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