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아라 과거날조
어제는 오랜만에 교회에 갔다. 저녁 예배를 드리느라 환하게 불이 밝혀진 교회를 지나가다 충동적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예배당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 같이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성경책도 뭣도 없이 빈손으로 아무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교회는 사년만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교회를 다니는 분이셨다. 따라서 나는 신이 뭘 하는 사람인지도 알기 전에 영문도 모른 채 교회에 끌려다녀야 했다. 자그만 성경책을 들고 아동반에 들어가 말씀을 듣고 기도를 했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부턴 늘 비슷한 이야기만 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턴 더 열심히 나갔다. 그러다가 중학교 이학년에 교회에 가는 걸 그만 뒀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시기 즈음 그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교길에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고 좌절하여 기도고 뭐고 다 때려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향이 없지도 않겠지. 매 주일마다 꾸준히 나가던 교회를 밥 먹듯 빠지기 시작하자 당연히 어머니는 나를 타박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무렇게나 만든 이유를 대고 빠져나왔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따로 나와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닦달을 들을 필요가 없어 편했다.
사실 가족과 사는 것이 내게는 조금 불편한 일이었다. 행동과 말투를 모두 검열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튼 오랜만에 나간 교회는 여전히 고요하고 웅장했으며 나 같은 건 구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말씀을 듣다가 마치는 기도를 했다. 나는 사람들보다 반박자 늦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쥐었다. 무슨 기도를 올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빌지 못했다. 애초에 내가 바란 구원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했다. 어느날 갑자기 가슴이 나오고 생식기가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그런 꿈을 꾸질 않게 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되는 것일수도 있겠다. 대체 어릴 때는 무슨 기도를 했던건지.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같은 부활동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오토가리 아도니스로 나는 주로 아도쨩이라고 불렀다. 먹으려고 샀던 아이스크림중 하나를 그애에게 주자 그애는 무뚝뚝한 말투로 내게 인사했다. 이 시간에 어쩐일로 돌아다니냐 묻자 누나의 심부름을 나왔다고 했다. 예전에 누나가 많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나는 가족의 얘기가 나오면 급격히 말 수가 적어지는 편이라서 얼른 잘가란 인사를 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애가 난데없이 내 손목을 잡고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나는 얼결에 그애의 집에 끌려갔다.
그애의 집은 주택가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앞서 말한 누나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른 가족들은 다 어디에 있냐고 묻자 내게 받은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던 그애는 조금 머쓱해하며 가족들은 전부 고향에 있다고 말했다. 그럼 심부름은? 나는 질문을 바꿔 물었고 매달 보내는 편지에 함께 보낼 선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녁밥은 편의점에서 사온 라멘과 도시락이었다. 식사에 초대해놓고 그런 형편없는 식단이라니 어이가 없어진 내가 매일 이런 걸 먹는거냐 물었다. 그애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뒤에 나에게 이런 음식을 싫어하냐고 했다. 싫어하냐니. 당연하지. 나는 당장에 두팔을 걷어붙여 내가 사온 재료들로 간소하게 식사를 차렸다. 고등어구이와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이었다. 내가 요리를 하는 내내 그애는 옆자리를 기웃거렸다. 손님에게 이런 일을 시키게 된 것이 퍽 미안해 보였다. 나는 그 어린애같은 행동에 웃음을 감추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일렀다. 그러자 그애는 또 완전히 식탁에 엉덩이가 붙어버린 듯 앉아선 얌전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무척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많이도 꿈꾸던 광경이었다. 번거롭고 사사로운 것들에 신경 쓰고, 귀찮은 일이라며 나를 상처받게 하는 것들에 신경 끄기 전. 좋아하는 사람과 사이좋게 식사를 하고 나란히 티브이를 보고 마음에 들던 옷을 자랑해보는 일. 나는 얼른 고개를 털었다. 아도쨩은 나랑 그런 사이도 아닌데다가 이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 하고 자신에게 경고했다.
두 사람이 같이 식사를 하기엔 좀 좁은 테이블이었지만 반찬이 적어서 심하게 비좁지는 않았다. 그애는 묵묵히 밥을 퍼먹은 뒤 맛있다고 칭찬하고 반찬을 집어먹은 뒤 맛있다고 칭찬했다. 요리가 취미냐고도 물었다. 나는 딱히 그런 건 아니었지만 원채 보고 따라하는 솜씨가 좋아서 이정도는 혼자 해먹는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밖에선 뭘 하고 있던거냐고 했다. 나는 저녁을 사러 나왔다고 했다가 덧붙여 교회에 잠깐 들렀다고 대답했다. 그애는 교회에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거기선 뭘 하냐고 묻기에 예배를 드린다고 했더니 예배는 뭘 하는 거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나는 고민하다가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라고 대답했다. 다행이도 기도가 무엇이냐곤 묻지 않았다. 대신 무슨 기도를 했는지 물었다. 나는 열심히 밥을 씹던 것을 멈추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 기도도 하지 않았는데. 한참 고민하다가 ‘뭐든 열심히 하는 남자애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서 저녁을 같이 먹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라고 대답했다. 대충 들어도 지어낸 것이 뻔한 말에 그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신기하다고 했다. 원래 좀 순진한 구석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줄은 몰랐다. 그 후로는 그애를 놀려주느라 남은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그애를 따라 산책을 나갔다. 매일 동네를 세 바퀴씩 돈다고 했다. 그애의 몸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고려해보자면 합당한 운동량이었다. 막 열시가 넘어간 시간이라 길에는 사람이 적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주로 내가 묻고 그애가 답하는 식으로 떠들었다. 시답잖은 질문에도 성실하게 구는 태도가 좋아서 일부러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가볍게 라지만 달리면서 말을 하느라 이따금 숨가쁜 소리를 내면 그애가 걸음을 늦춰주었다. 이제는 불이 꺼진 교회 앞을 지나갈 때 내가 먼저 여기가 바로 아까 말한 교회라는 곳이라고 알려주자 그애는 걸음을 멈추고 커다란 십자가가 달린 교회를 가만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얼마를 내야 갈 수 있는 거냐고 했다. 그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며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소원을 들어주는데 돈도 받지 않는 거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또 한 번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사실은 허락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거라고 대신 내가 기도를 해줄테니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자 그애는 입을 합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는 걸까?’
‘그런 건 기도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바람이다’
그건 그렇네. 나는 그애의 현명한 대답에 동의했다.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는 대게 이뤄지기 힘든 것 일터이다. 나 또한 그랬듯이.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 것은 가장 바라는 걸 포기했기 때문일까.
‘소원 꼭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하나?’
‘어머. 아도쨩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이렇게 진지한걸 보면...?’
나는 머리를 흐리게 만드는 잡념을 얼른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그애에게 장난을 걸었다. 그애는 여전히 세상 둘도 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정말로 진지한 상대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사실대로 털어놓으려던 찰나 그애가 고개를 갸웃 기울인채 머뭇거리며 말했다.
‘앞으로도 가끔씩 이렇게... 우연히 만나면 좋겠다고...’
그 순간 내가 예전에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시절에 올리던 기도가 떠올랐는데.
‘부탁한다 나루카미.’
제발 나 좀 행복하게 해달라고.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몇 년을 돌아온 소원이 왜 그때 떠올랐는지. 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