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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토모 네임버스 엽편

Piece of moon 2016. 11. 11. 03:02

渉 아주 어릴 때 저것과 비슷한 글자를 찾기 위해 읽을 줄도 모르는 옥편을 뒤져본 적이 있다. 어린 토모야에겐 등 언저리에 박혀있는 남의 이름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고작 이름인데 무겁고 내 키가 작은 건 다 그 탓이라 원망하게끔 만들고. 실제로도 토모야의 등은 또래의 아이들보단 조금 굽었다. 이름은 주인을 만나면 서서히 희미해지다가 사라진다던데. 얼른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거 있으면 옷 갈아입을때도 불편해. 자꾸 뭐냐고 물어보니까. ...얼른 사라졌음 좋겠다. 열일곱의 마시로 토모야는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교문을 넘었다. 만일 운이 좋다면 이곳에서 이름의 주인을 만나 서로에게 지우개질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토모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특별한 일은 나한텐 절대 안 일어나. 절대로. 여신님이나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이게.

友也 그것은 어느날 아침 와타루의 왼쪽 어깨에 새처럼 날아와 앉았다. 히비키 와타루는 무척 똑똑했기에 옥편을 찾아보지 않고도 그것을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있었다. 친구. 어깨에 발을 붙이고 앉은 친구. 와타루의 세계에 그다지도 선명한 것은 그 이름이 처음이었다. 타인에게 외면당해 외로움이 저 끝에서부터 심연을 파헤치고 기어 올라올 때에도 와타루는 체조를 하듯 어깨를 좌우로 빙빙 돌리며 웃었다. 마음은 잘 알겠지만 제 어깨에 친구가 앉아있답니다. 그러니 저는 무너질 수 없게 되어있어요. 간단한 물리법칙에 의하면... ... ... 툭. 와타루는 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갈색머리에, 갈색눈에, 펑퍼짐한 교복이라니. 신장이 자랄 걸 예상하고 맞췄다면 분명 한 달 안에 두 마디는 짧아지겠네요. 그보다 조금 전에 봤는데도 얼굴이 잘 생각이 안 나는군요? 이렇게 존재감이 없을 수가. 아하하.


히비키 와타루는 이름을 자주 들여다봤다. 손목의 시계처럼, 지루한 수업시간마다 괜히 창 밖을 내다보는 학생처럼. 이름의 주인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제발로 찾아왔지. 마시로 토모야를 처음 만난 날 와타루의 기분은 하늘로 날아갔고 실제로도 열기구를 타고 붕 날아올랐다.

토모야는 깐깐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뭐든지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먹어버리는 아이였다. 와타루는 제 머릿속 환상과는 너무나 다른 토모야의 모습에 하루에도 백 번씩 실망했지만 이름을 타올로 빡빡 지운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토모야를 괴롭혔다. 내 유일한 친구가, 이런 볼품 없는 남자 였다니요. 이 히비키 와타루, 통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러든 말든. 토모야는 연극부 안에서의 제 입지를 착착 잡아갔다. 아마도 이름의 주인이었을 사람을 만난 것도 같았는데... ... ... 거기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은 자주 만났고 부딪히고 무의미한 언쟁을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몸 어딘가에 찍혀있을 그것. 와타루의 것은 조금 희미했고 토모야의 것은 아직 선명했다. 까무잡잡하게 탄 토모야의 등줄기를 손끝으로 슥 문지르던 와타루가 말했다.

“이거. 서로를 알게 되는 순간부터 옅어지는 거 알고있지요?”

“누굴 바보로 알아요?”

“무엇이던 감정을 나누라는 거잖아요. 참 가혹한 형벌이지요. 토모야군에게 있는 히비키 와타루를 지우기 위해선, 나를 죽도록 미워하거나 죽도록 사랑해야 해요. 물론 저는 토모야군을 죽도록 사랑 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아니 실은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천하의 히비키 와타루도 긴가민가한 중대 사항이었는데, 와타루가 어렸을 때 비둘기 대신 참새를 꺼내놀고 단발머리를 베베 꼬고 모자 속에 새집을 숨겨두기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 시간이 흘러 풍화되었다 뿐이지. 네 살의 히비키 와타루는 자기 전에 늘 눈을 감고 생각했다. 토모야가 행복하기를.

신의 어여쁨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히비키 와타루의 소원은 저 멀리 별을 건너 평범한 집의 한 구석에 들어가버린다. 히비키 와타루가 바란 행복이 조금 달랐더라면 토모야의 인생 방향 또한 변경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신의 귀여움을 받았고 신은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려 했다. 고작 이름만으로 사랑에빠져 허우적대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소원 쯤이야.

히비키 와타루의 행복은,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밥을 먹고, 평범하게 잠을 자고,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